그냥
일본 지방에 사는 30대 아줌마의 아르바이트 이야기
주절주절
작년 10월부터 일주일에 2-3일,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없는 5시간 동안
다이닝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.
그동안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, 번역이나 발송 아르바이트만 하다가
몇 년 만이지...
약 5년 반? 만에 사람들와 대면하는 일을 시작했다.
학교 다닐 땐 4년 동안 한 식당에서 매일, 그리고 사장님과 주방 이모 외에 나 혼자 있었기 때문에
손님 안내하고 주문 받고, 서빙, 주방 보조 등 전부 혼자서 다 해냈었기에
비록 거의 8년 전 일이지만 나는 내가 이런 식당 일을 굉장히 잘 할 줄 알았다.
그래서 파는 메뉴는 다르지만, 바로 집 근처에 알바자리를 구해서 너무 좋았다.
처음엔 한 달이면 금방 익히겠지했다.
오픈 전 청소하는 것도 음료 만드는 것도, 처음에는 습득이 빠르다며 칭찬도 받았다.
그런데 주문 받는 연습을 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일본어가 안 나오더라.
집에서 아이와는 늘 한국어로 대화하고, 마마토모도 없고, 유치원 선생님하고도 대화할 일이 적고
그나마 일본어로 대화할 환경이라면 시댁인데, 시댁에서도 딱히 대화를 막 하진 않아서...
일본에서 어딜 가든 일본어로 곤란했던 적이 없었는데(모르는 말이 나오면 그게 뭐냐고 다시 되물어 보면 되니까)
스스로 정말 놀라고 당황해서 더 어버버 했던 것 같다.
그렇게 두, 세 달만에 주문 받는데 떨리지 않게 되었다.
주문을 받아 음료를 만들고 서빙하는 것도
아무래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하니 나름의 순서와 규칙이 있는 듯,
그걸 눈치껏 맞춰서 해야하는데 그게 안 되더라.
한 마디로 일을 하는 센스가 부족한 것.
다른 아르바이트 생들은 모두 일을 한 지 오래된 듯 했다. 아니, 모두 정직원이고 나만 아르바이트 생인가?
아무튼 사장님 내외와 웃으면서 일을 하다가도
갑자기 손님이 몰릴 때나 실수가 있을 때 서로 예민해져서 큰 소리가 오가기도 했다.
하지만 그것도 그 순간만 그럴 뿐, 그 상황이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 서로 장난치곤 했다.
머리로는 와, 정말 성격 좋은 사람들이다!! 생각했지만,
막상 내가 실수해서 '그렇게 하면 안 돼요!' 라는 말을 들으면 계속 주눅이 들었다.
그 사람들은 그냥 그 상황에서만 큰소리 내고 그저 가르쳐주려는 것 뿐인데,
머리로는 알겠다, 다음 부턴 같은 실수 안 하고 더 잘해 보겠다! 하면서도 몸이 자꾸 경직되더라.
사장님과 알바생들, 이 완벽한 시스템 안에 괜히 타지에 있던 돌멩이 하나가 끼어 들어와서
걸리적거리기만 하는 거 아닌가...
사실 세달 째까지 일의 우선 순위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주의를 들었다.
그래서 더, 아직도 나만 겉돌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.
내가 이렇게까지 센스도 없고 후딱후딱 못하는 사람이었나...?
아니 이 나이 먹도록...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해내는 사람이었나...?
혼자 있을 때랑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때랑 이렇게 다른 사람이었나?
코로나를 핑계로 너무 폐쇄적으로 살았나?
아르바이트를 가는 날마다 한 번씩 주의를 받긴 했지만
사담이나 농담을 주고받는 날도 많았다.
나도 마음 편하게 잡담 나누고 싶었지만, 말을 걸어올 때마다 긴장이 되고
혹시나 말실수를 하게 될까봐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.
아이가 생기고 성격이 좀 더 뻔뻔해 진 줄 알았는데, 더 소심해진 것 같다고 느끼는 요즘이었다.
2024년이 되고, 또 아르바이트를 가는 날이 왔다.
연말연시에 한국에 나갔다 와서 오미야게를 준비하긴 했는데,
일이나 잘하지 부담스럽게 왜 이러시나 하실까 봐 조금 걱정되긴 했다. ㅋㅋ
내가 선물같은거 준비하면서 언제부터 이런 걱정을 했다고 ㅋㅋ 하 진짜...
가기 전부터 자꾸 떨리고 긴장이 되어서 친한 언니랑 남편한테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.
오늘은 실수하지 말고 그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잘 섞여 보고 싶다고
그리고 언니와 남편의 응원을 받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었다.
그래, 사람이 실수야 할 수도 있는 거지
그리고 뭐 그 사람들 속에 꼭 섞여 들어갈 필요도 없지
그 사람들도 사람이 필요하니까 구인광고를 낸 거 아니겠어
해도해도 안 되겠다 싶으면 자르는 것 밖에 더 하겠냐!!
평소보다 일찍 가서 준비한 오미야게를 전달하고
평소처럼 청소부터 착착 시작했지만
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지, 사실 굉장히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다. ㅋㅋ
아 사람 대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졌을까.
그러던 와중에 사장님한테 고용계약서를 받았다.
읽어보고 괜찮으면 도장찍어서 가지고 오라고.
그걸 작년 10월부터 말하더니 이제야 주시네...
아르바이트도 고용계약서를 주고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
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조금 얼떨떨하기도 했다.
깊은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지만 사장님 내외가 굉장히 준법정신이 뛰어나시고 뭐든지 철저하게 규칙적으로,
그리고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시라 '역시...' 싶기도 했다. ㅎ
해고 조항에 여러 조건들이 적혀있었는데,
한 마디로 가게에 도움이 되지 않고, 불필요하다 싶으면 그냥 자르겠다 라고 적혀있었다.
당연한 말인데, 왠지 찔렸다.
가게에 도움이 되지 않고... 가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... 나 아닌가;;;;;;;;
올해는 잘 해 봐야지 하고 시작했지만
2층에서 손님이 부르는 벨 소리를 두 번이나 못 들어서...... 또 혼남;;
식기세척기 옆에서 그릇닦느라 못 들었는데,
그래서 앞으로는 2층에 손님이 있을 땐 주방에 안 들어가겠다고 마음 먹었다.
주방이 바쁘든 말든... 나는 홀에 있겠다...!!
다음 주부터야 말로 실수 0으로 끝내야봐야지 ㅠ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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